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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소식] 배운 의학을 '쓰이는 지식'으로…이화의료아카데미의 실전 교육

  • 작성자 : 의과대학 관리자

이화의료아카데미는 임상해부학과 카데바, 플라스티네이션 표본, VR·XR, 의료 시뮬레이션 등을 활용한 실전형 의학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이화의료아카데미 한승호 원장. 사진=박으뜸 기자


의대생부터 개원의와 간호사,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종사자까지. 이대서울병원 지하 2층에 자리한 이화의료원 이화의료아카데미를 찾는 사람들의 소속과 직업은 제각각이다.


배우는 내용과 방법도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임상해부학부터 카데바와 인체 조직을 장기 보존한 플라스티네이션 표본, 가상현실(VR)·확장현실(XR), 의료 시뮬레이션까지 대상과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서로 다른 이들을 한곳으로 모으는 기준은 분명하다. 이미 배운 의학 지식을 의료현장과 산업에서 '쓸 수 있는 지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한승호 이화의료아카데미 원장이 이곳을 '실전형 의학 교육'을 위한 공간이라고 정의하는 이유다.


이화의료아카데미는 대학병원이 보유한 전문인력과 인프라를 내부에만 두지 않고 외부 의료기관과 산업계에 개방하고 있다. 정해진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제공하기보다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듣고, 참여 기관의 전문성과 이화의료원의 자원을 결합해 과정을 새로 짠다.


운영 실적도 쌓였다.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6개 과정을 열었고, 대학병원과 지역·전문병원, 바이오·의료기기 기업, 관련 협회 등 21개 기관에서 470명이 수료했다.


16일 진행된 부민병원 신규 간호사 프로그램도 이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부민병원은 신규 간호사들이 이론이나 시뮬레이션을 넘어 근골격계와 혈관계 등 인체 구조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심화 해부학 과정을 제안했다. 양 기관은 전문가 FGI(Focus Group Interview·표적집단면접)와 요구도 조사를 거쳐 기존 자체 커리큘럼에 이화의료아카데미의 전문인력과 해부학 인프라를 더했다.


박주용 서울부민병원 교육수련팀 실장의 어깨 회전근개 파열 강의부터 김훈 이화의료아카데미 연구조교수의 기초 해부학, 손지영 선임연구원의 인체 구조와 임상 적용, 카데바 실습까지 하나의 과정으로 묶였다.


같은 의학 지식이라도 누가, 어떤 업무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필요한 내용은 달라진다. 이화의료아카데미가 교육 대상과 목적에 따라 커리큘럼을 달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배운 의학과 실제 진료 사이…'간극'에서 시작된 고민


한승호 이화의료아카데미 원장이 인체표본관의 '구조가 학문에 앞선다(Structure precedes science)'는 문구를 가리키고 있다. 인체 구조에 대한 이해를 임상과 연결하는 이화의료아카데미의 교육 방향을 보여주는 문구다. 사진=박으뜸 기자


한 원장이 이화의료아카데미를 구상한 출발점은 학교에서 배운 의학과 환자를 마주했을 때 필요한 지식 사이의 간극이었다. 해부학자로 약 40년을 보내며 그는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 고민해 왔다.


한 원장은 "학생 때 해부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돼도 바로 환자를 보는 것은 두렵고 힘든 일이다"라며 "전통적인 해부학이 아니라 임상에 필요한 해부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길을 약 40년 걸어왔다"고 말했다.


그의 관심은 전통적인 해부학에서 임상해부학, 다시 응용해부학으로 넓어졌다. 의사와 간호사, 의료기사, 바이오·헬스케어 산업 종사자 등 각자의 업무에 따라 필요한 인체 지식도 달라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생각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구체화됐다. 1999년 가톨릭의대에 응용해부연구소를 만들 당시에는 의사가 배우는 해부학의 범위를 줄이면 간호사에게 필요한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업무를 들여다볼수록 직종마다 수행하는 일이 다른 만큼 알아야 할 인체 정보도 달라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 원장은 "흔히 아카데미라고 하면 최고경영자 과정이나 건강교실을 떠올리지만 제가 생각한 것은 달랐다"며 "한마디로 표현하면 '실전형 의학 교육'이다. 배운 것이 바로 사회나 현장에서 적용될 수 있도록 해보자는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21년 이화의료원에 합류해 관련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화의료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공식 출범한 것은 2022년 10월 24일이다. 2023년부터는 고용노동부 국가인적자원개발컨소시엄 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았다.


대학병원 지식 밖으로…의료·산업 만나는 '운동장'


부민병원 신규 간호사들이 이화의료아카데미에서 인체 구조를 직접 확인하는 카데바 참관실습을 진행하고 있다. 제공=이화의료원


이화의료아카데미의 문은 의료원 밖을 향해 있다. 대학병원이 축적한 지식과 전문인력, 시설을 필요한 의료기관과 산업계가 공유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하지만 한 원장이 말하는 '개방'은 시설을 빌려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외부 기관이나 기업이 풀고 싶은 문제를 가져오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와 자원을 한데 모아 해법을 찾는 데 방점이 찍힌다.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은 제품과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임상 지식이 필요하지만 해당 분야 의료진과 접점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의료진이 보유한 전문성도 산업계의 수요와 만나면 공동 연구나 기술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원장은 "의료원이 알고 있는 지식을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쳐준다는 개념보다는 현장에서 가장 뜨거운 일이 무엇인지 듣고 싶었다"며 "산업과 의료기관이 한꺼번에 만나 원하는 공동 연구나 개발을 할 수 있는 장, 말하자면 '운동장'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카데미였다"고 말했다.


참여 범위는 의료기관을 넘어 기업으로 넓어져 있다. 국가 지원사업과 연계해 바임, 갈더마코리아, 코스맥스, SHP 등 메디컬 에스테틱·바이오·뷰티 기업 재직자를 대상으로 직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내용도 기업별 수요에 맞춘다. 갈더마코리아에는 메디컬 에스테틱과 관련한 정밀 인체 구조 이해를, 코스맥스에는 뷰티테크·항노화 연구개발 인력의 임상·해부학적 이해를 높이는 과정을 각각 구성했다.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와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등 관련 단체와도 협력하고 있다. 향후에는 의사와 간호사, 의료기사뿐 아니라 제약·바이오·의료기기 기업의 연구개발과 마케팅·영업 인력까지 참여 대상을 넓힌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맞춤형 과정은 교육을 요청받은 뒤부터 설계가 시작된다. 참여 기관의 직무와 목적, 필요한 역량을 파악하고 전문가들이 커리큘럼을 함께 짠다. 이후 해부학·임상·간호 등 분야별 강사진을 배치하고 이론과 실습을 진행한 뒤 평가 결과를 다음 과정에 반영한다.


이화의료아카데미에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와 콘텐츠 제작 인력도 있다. 강의에서 다룬 의학 지식을 그림과 시각자료로 구현하고, 교육 이후에도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로 축적하기 위해서다.


한 원장은 "교육은 말로 전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인가 남아야 한다"며 "교육 내용이 시각화되거나 간략한 정보로 정리돼야 하기 때문에 이를 담당하는 팀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화의료아카데미가 개방하려는 것은 공간 자체보다 대학병원이 가진 사람과 지식, 교육자원이다. 필요한 곳의 수요를 먼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문가와 인프라를 연결하면서 대학병원이 보유한 자원의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외우던 해부학을 환자에게…'실전형 교육'의 의미


김훈 이화의료아카데미 연구조교수, 손지영 이화의료아카데미 선임연구원이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제공=이화의료원

신규 간호사는 정맥주사와 정맥관 관리, 흡인, 유치도뇨관 삽입·관리 등 환자의 신체와 직접 맞닿는 처치를 수행한다. 교과서나 모형, 영상은 구조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되지만 피부와 혈관의 깊이, 근육의 층과 개인별 차이까지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김훈 이화의료아카데미 연구조교수는 카데바 참관실습이 모형과 영상 중심 학습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고 봤다.


김 연구조교수는 "실제 인체의 혈관과 신경, 근육의 정확한 위치와 깊이를 눈으로 확인하고 직관적으로 체득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맥주사를 놓더라도 피부 아래 혈관과 주위 신경·근육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입체적 시각화(Visualizing Anatomy)'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손지영 이화의료아카데미 선임연구원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해부학은 구조물의 이름과 위치를 익히는 과목에 가까웠지만, 간호사가 돼 환자를 만나면서 그 지식만으로는 술기와 충분히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체감했다.


손 선임연구원은 "정맥주사나 근육주사를 할 때 단순히 정해진 위치에 주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가 지금 처치하는 부위에는 어떤 해부학적 구조물이 있고 어떤 혈관이나 신경이 지나갈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임상술기를 해부학적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니 단순히 암기하던 해부학이 실제 환자에게 적용되는 살아 있는 지식으로 다가왔다"고 덧붙였다.


카데바는 여러 학습수단 가운데 하나다. 이화의료아카데미는 교육 목적과 여건에 따라 플라스티네이션(Plastination·인체 조직을 특수 처리해 장기간 보존하는 기법) 표본과 가상현실(VR)·확장현실(XR), 임상 시뮬레이션 등을 함께 활용한다.


플라스티네이션 표본은 카데바 실습 전 인체 구조를 익히거나 카데바를 이용하기 어려운 단기 과정 등에 쓰인다. 바이오·의료기기·제약기업 재직자를 위한 인체 구조 및 신제품 임상 적용 과정과 보건계열 대학생 대상 맞춤형 해부학 프로그램에도 활용된다.


VR·XR과 임상 시뮬레이션의 역할은 또 다르다. 벽면 등에 영상을 투사해 몰입형 가상환경을 구현하는 CAVE 프로젝션 시스템과 VR 기기, 성인 시뮬레이터 등을 이용해 감염병 대응과 응급환자 처치, 중환자 간호 모니터링 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훈련한다. 지역 종합병원·중소병원 간호사를 위한 응급처치 시뮬레이션과 중환자 간호술기 워크숍, 산학연 연계 기술실증 등에도 적용하고 있다.


실물 표본에서 인체 구조를 확인하고 VR·XR로 가상 구조를 살핀 뒤 시뮬레이터에서 임상상황을 연습하는 등 교육 목적에 따라 여러 수단을 단계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이다.


손 선임연구원은 "이번 교육의 목표는 해부학 지식을 더 많이 암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해부학적 지식을 실제 환자와 임상술기에 연결해 생각하는 능력, 환자의 안전을 해부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임상적 안목을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원장이 여러 훈련수단을 마련하려는 목적도 환자에게 닿아 있다.


그는 "환자에게 직접 하기 전 단계의 교육이 필요하다"며 "결국 마지막에 가장 혜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환자다. 환자가 보다 안전하게 시술받고 불편과 부작용을 줄이는 데 교육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250평 교육센터 구축…이화 넘어 지역 거점으로


한승호 이화의료아카데미 원장이 인체표본관에 전시된 해부학 일러스트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으뜸 기자

이화의료아카데미는 교육 방식뿐 아니라 이를 구현할 공간도 넓히고 있다. 이화의료원은 오는 11월 약 250평 규모의 가칭 'E-CASE 센터(Clinical Anatomy & Surgical Education Center)' 개소를 준비하고 있다. 해부학을 기반으로 임상과 수술·시술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독립 공간이다.


현재 카데바 등을 이용한 일부 프로그램은 의과대학 실습실의 비는 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E-CASE 센터가 문을 열면 의대 수업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교육과 실습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독립된 훈련공간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의료기술과 수련환경의 변화다. 최소침습·로봇수술 등이 확대되면서 선배 의료진의 술기를 지켜보고 단계적으로 참여하는 기존 도제식 교육만으로 충분한 경험을 쌓기 어려운 상황도 생기고 있다.


한 원장은 "과거에는 도제식으로 조금씩 배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옆에서 관찰만 하고 직접 손을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환자에게 적용하기 전에 충분히 공부하고 연습할 수 있는 센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원장이 구상하는 교육 인프라 공유는 이화의료원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학병원과 지역 의료기관의 협력이 환자 의뢰·회송이나 진료협력에 집중돼 왔다면, 의료인 교육과 전문인력 양성에 필요한 자원을 공유하는 것도 새로운 협력 방식이 될 수 있다.


카데바 실습실과 VR·XR 시뮬레이션 시설, 인체표본관 등을 개별 의료기관이 각각 구축하고 유지하기에는 비용과 공간의 부담이 크다. 대학병원이 갖춘 전문인력과 교육시설을 외부 의료기관이 함께 이용하면 기관마다 같은 인프라를 갖추지 않고도 필요한 교육에 접근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전국의 의료인과 산업계 종사자를 이화의료아카데미 한곳으로 모으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 원장은 수도권에 교육자원을 집중하기보다 각 지역에서 필요한 교육을 수행할 수 있는 거점이 마련돼야 한다고 봤다.


한 원장은 "이화의료아카데미가 준비됐으니 전국 학생들이 모두 이곳으로 오라는 것이 아니다. 대구와 광주, 부산 등에도 지역 거점센터가 생겼으면 한다"며 "모든 대학이 많은 비용을 들여 각각 시설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기관의 노력만으로 갖추기 어려운 교육 인프라를 어떻게 지원하고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고민도 필요하다. 한 원장은 의료인 교육과 바이오·헬스케어 산업 인재양성을 뒷받침할 교육체계를 국가 차원에서도 갖춰나갈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가 이화의료아카데미에 기대하는 역할도 여기에 있다. 모든 교육을 이화의료원으로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시도한 교육 방식과 인프라 공유 모델이 하나의 롤모델이 돼 다른 지역과 기관에서 각자의 여건에 맞는 더 나은 형태로 발전하는 것이다.


한 원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반드시 어딘가에 쓰일 수 있을 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카데미가 하나의 좋은 예가 돼 누군가는 저보다 훨씬 더 좋은 방법, 더 개선된 방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출처 : 메디파나뉴스(https://www.medipan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