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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소식] “제 눈엔 노숙인 아닌 환자였습니다” 최영아 서울시립서북병원 진료협력센터장

  • 작성일 : 2022-12-12
  • 조회수 : 63
  • 작성자 : 의대행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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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아 서울시립서북병원  진료협력센터장, 내과전문의. 사진 구혜정


그냥 달아날 법도 했다. 예과 2학년, 교회 오빠를 따라간 청량리 무료 급식소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눈에 봐도 아파 보였다. 따뜻한 밥 한 끼 먹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노숙인의 온몸이 비에 젖어갔다. 왜 그들은 차디찬 길바닥에 몸을 뉘어야만 했을까. 여태까지 어디서 어떻게 병들었을까.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 듯 조심스럽게 길 밖을 나선 이들을 살피다 보니 20년 세월이 훌쩍 넘었다. 하고 싶은 공부와 일에 관심 두었을 뿐인데 ‘노숙인의 슈바이처’라는 별칭도 따라붙었다. 밖으로 나가 소외됐던 우리 이웃의 손을 잡아준 최영아(52) 서울시립서북병원 진료협력센터장(내과 전문의)을 만났다. 


“할 일을 했는데 상을 주셨습니다.”

최영아 센터장은 지난 9월 JW그룹 공익재단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주는 열 번째 성천상 수상자가 됐다. 성천상은 JW중외제약의 창업주 성천 이기석(1910~1975) 회장의 생명 존중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2년에 제정된 상이다. JW중외제약은 "의사는 가장 병이 많은 곳에 가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20여 년간 노숙인을 위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면서 생명존중의 정신을 실천한 공로"로 최 센터장에게 이 상을 주었다.  그런데 상을 받은 소감을 물으니 장난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주시니까 받았죠. 한창 코로나 환자 볼 때는 제33회 아산상 의료봉사상을 받았어요. 제가 단체를 운영하고 있어서 후원금을 유치하거나 홍보를 해야 하는데, 매일 환자를 봐야 해서 그럴 여력이 없거든요. 상 받으면 홍보 효과도 있잖아요(웃음).”

말은 이렇게 하지만 20년 내공의 여유다. 현재 서울시립서북병원 진료협력센터장이면서 비영리 민간단체 마더하우스와 사단법인 회복나눔네트워크(2016년 설립)의 대표직도 맡고 있다. 마더하우스는 2009년 여성 노숙인을 위한 장기 쉼터로 출발해 2012년 비영리단체로 등록한 단체이며, 회복나눔네트워크는 마더하우스가 그 활동을 위해 설립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이전에는 요셉의원 의무원장, 서울역 노숙인진료소와 다시서기의원 원장, 한국누가회 상임이사였다. 지금 근무 중인 서울시립서북병원에 오기 전까지 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의 내과과장으로 노숙인을 돌봤다. 이화여대 의대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의사로 살아오는 동안 늘 그는 생명과 이웃의 소중함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며 살아왔다. 


건물 밖이 집인 사람들을 위해

최 센터장의 의사 생활은 노숙인을 마주하면서 제대로 눈을 뜨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과 전문의 자격증을 땄던 2001년, 남들이 학교에 남아 펠로(전임의) 과정을 밟거나 취업을 선택할 때 다일천사병원 의무원장 직을 택했다. 노숙인의 건강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예과 2학년 때부터 다일공동체(1988년 밥퍼나눔운동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제 NGO)에서 한국누가회(전국 의과대학, 치과대학, 한의과대학, 간호대학에 존재하는 기독교 동아리) 친구들과 노숙인들에게 밥을 무료로 나눠주는 봉사를 했어요. 1990년 여름에 봉사하러 가자는 교회 오빠를 따라서 간 게 계기였습니다.”

그 당시 다일공동체로 향하는 청량리 뒷골목 홍등가의 풍경도 놀라운데, 노숙인이 너무도 많아 충격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꼭대기에 마련된 곳으로 가보니 교회 권사님들이 밥이 가득 담긴 통을 주셨어요. 그걸 들고 1층까지 내려갔는데 비가 내리더라고요.”

지금은 사정이 좋아져 무료 급식 장소가 많이 늘었지만, 그땐 따뜻한 밥과 국을 식판에 내주는 곳은 다일공동체가 유일했다. 노숙인이 줄 서서 기다리는 그 밥을 또 언제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매번 식사 때마다 200~300명은 와서 줄을 섰다.

“비도 오는데 정말 씻지 않은 분들이 밥을 기다리고 바닥에 앉아 식사하셨어요. 지금은 물로 씻을 곳도 많아서 노숙인 티가 잘 안 나는데 그땐 그랬어요.”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일가족이 나와 사는 노숙인 가족도 쉽게 눈에 띄었고, IMF가 터지자 직장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지하철역으로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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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일천사병원(왼쪽)에서 의무원장을 하던 시절(오른쪽 사진 중앙). 사진 제공 최영아 센터장.



의사의 눈에는 그저 환자일 뿐

“지금은 정말 많이 줄었어요. 서너 살짜리 아이들이 돌아다니면서 동냥하던 때도 있었어요. 현재는 아동보호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그런 아이들은 경찰이 출동해 돌봄 시설로 보내고 있지요. 2011년에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노숙인복지법)’이 생기기 전에는 말도 못하게 거리에 사람이 넘쳐났어요. 그러다 한국누가회 학생들과 모여서 무료진료소를 만들자고 했고, 매주 토요일 노숙인을 위한 무료 진료를 하게 됐습니다.”

토요일마다 학교별로 돌아가면서 진료에 나섰다. 무료로 진료한다는 소문이 나니 노숙인들은 어디가 아픈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때는 학생이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혈압이나 당뇨 수치 재는 것밖에는 없었어요. 그런데 혈압과 당뇨도 너무 높고 조절도 안 되더라고요. 병은 너무 많아 보이는데 무슨 병인지도 모르겠고 말이죠.”

그때부터 최 센터장의 고민은 노숙인들이 시달리는 병의 근원이었다. 병명이 뭔지, 왜 아픈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갔다.

“왜 이렇게 됐을까, 어떤 식으로 관리해야 할까? 그걸 알아내고 싶은 게 제일 컸던 것 같아요. 내과 전문의가 되고 나서 다일공동체에서 노숙인을 위한 병원을 만든다기에 저도 동참하고 싶었어요. 제 이런 선택을 굳이 봉사나 선교 등의 개념으로 말씀하시는데, 의사로서의 정체성, 의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질병을 정리하고 알아내고 싶었죠. 그래서 시작한 게 다일천사병원이었습니다.”

의사가 돈 벌기를 갈망하고, 주장하면 끝도 없었겠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훈련받고 싶었다고 최 센터장은 말했다. 

“레지던트나 펠로도 월급은 적지만 자기 역량을 높이려고 학교에 남는 거예요. 그런 차원에서 결국 의사는 책 보는 것보다는 환자를 통해서 배우는 거더라고요. 내가 환자를 본 만큼 진료를 잘 하게 되는 것에 의의를 뒀죠. 본과 3학년 때 깨달았어요. 공부하는 것보다 환자 한 명 더 보는 게 남는 거라고요.” 


노숙자 의료의 선구자를 만나다

다일천사병원을 열기 한 달 전인 2001년 2월 요셉의원 고 선우경식(1945~2008) 원장을 찾아갔다. 1983년 서울 신림동 철거민촌 의료봉사를 계기로 선우 원장은 요셉의원을 열어 노숙자와 극빈층을 위한 의료봉사를 해왔다. 최 센터장은 요셉의원에서 자원봉사를 해가면서 어떻게 진료를 하고 운영할지에 대해 질문하며 배워나갔다. 길 위의 사람들을 돕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더 먼저 찾아가 봉사하고, 힘을 모으고 있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복지 사업 대부분이 성공회나 구세군, 마리아수녀회 등 종교 민간단체의 주도로 이뤄졌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2000년대가 되면서 시민 복지 수준이 높아지고 노숙인과 취약계층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조짐이 보였다.

“그 이후 서울시가 노숙인 관련 사업 전반에 대한 주도권을 갖고 5년씩 위탁 경영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어요. 일선에 계시던 신부님, 수녀님들은 위탁 경영에 필요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도 하셨어요.”


가족은 이런 최 센터장의 활동을 환영했는지 궁금했다. 1‧4후퇴 때 혈혈단신 빅토리아호를 타고 남으로 내려온 아버지는 딸의 행보에 긍정적이었다.

“부모형제를 북에 두고 혼자 남쪽에서 사는 데 한이 맺히신 건지, 제 선택에 대해 그냥 찬성을 하셨어요. 시부모님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결혼하고 첫째를 낳고 내과 전문의 따면서 하게 됐거든요.”

어쩌다 보니 남편도 의사로서 최 센터장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남편도 의료 봉사를 많이 했어요. 선우경식 원장님을 함께 만나 뵌 적이 있는데, 제가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남편을 독려하셨지요. 남편은 5년 전부터 서울시립영등포보현의집에서 노숙인을 진료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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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왼쪽)과 함께. 사진 제공 최영아 센터장.



어떤 병에 고통 받았을까

노숙인들을 치료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들이 앓고 있는 병 중 당뇨가 가장 많다는 점이었다. 다른 나라의 연구사례를 봐도 그렇다. 당뇨는 혈압, 뇌혈관 질환 등 합병증도 동반하게 된다. 집이 없고, 알코올 중독이거나 약물중독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바이러스로 인한 B형 감염 빈도도 높다고 했다.

“노숙인들은 결국 뇌가 망가져요. 뇌경색도 많이 오고, 노숙하다가 머리를 다치기도 하고요. 술, 담배를 많이 하면 고관절이 녹아내려요. 이런 질환을 다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어요. 지금 저의 입원 환자 전부 노숙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어차피 의사를 하기로 작정했다면 어떤 종류의 환자들이 나타나든 병명이 뭔지 알아야 되는 건 숙제잖아요. 근데 이제 다 알았어요(웃음).” 

다행인 것은 최 센터장과 함께 노숙인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랐던 이들이 ‘노숙인복지법’이 생기는 데 일조하고, 자선단체가 전담했던 의료부문도 공공 영역으로 안착시킨 점이다. 민관이 살피니 노숙인은 많이 줄었고, 노숙인 또한 아프면 당당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됐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하는 일도 바쁜데…”라며 무슨 계획이 필요하냐는 듯 웃었다.

“입원 환자 열심히 보고, 퇴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병원 사회복지과와 마더하우스와도 협력해 길로 안 나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도울 겁니다.”

최 센터장에게는 그 어떤 것도 특별할 게 없어 보였다. 사명감에 활활 타오르거나, 끓어오르는 열정으로 세상과 싸울 것 같지도 않았다. 인터뷰 내내 흐르는 분위기는 유머감각과 평정심이었다. 지금까지 차갑고 어려운 길을 묵묵하게 걸어온 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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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아 센터장은 쾌활하고 멋지다. 바닥과 맞닿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마주하면서도 밝고 긍정적으로 잘 살아왔으니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가 맞을 듯싶다.  사진 구혜정 기자.




출처 : 데일리임팩트(https://www.dailyimpact.co.kr)